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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나 해봐요 김잘못씨

자기계발 위해 글을 쓰다 과거에 썼던 글 돌아보기 02.

by 김잘못 2023. 1. 31.

 

 길을 걷다 문득, 핸드폰으로 SNS를 하다 문득, 오래전 사귀었던,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보일 때마다 항상 가슴속 무엇인가가 울컥 올라오곤 한다. 결코, 옛 감정이 올라오는 그런 것은 아니다.
이는 열등감과 분노와 같은 감정이라 생각한다.


왜 너는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라는 생각이 내 평상심을 흩트리고 깨부순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직도 내가 이런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때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가 다르고 이유도 다르겠지만 옛사람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또한 모두 느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아직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되는 걸까?


그 시발점은 ‘그때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어떻게 되돌릴 수 없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 현상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어떠한 대상에 대해 내가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어 더욱더 집착하고 갈망하게 되는 현상인데, 나 같은 경우는 그 대상이 그 여자와의 과거인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뉴턴이 ‘나는 가설을 설정하지 않는다.’라 줄기차게 말했지만 그러면 뭐 합니까, 당신을 좋아하는 저는 이렇게 형편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이 향은 그 여자의 향이다.’와 같은 집착성 짙은 ‘프루스트 현상’으로 인한 것이다.


그놈의 망할 ‘프루스트 현상’이란 어떠한 냄새나 향을 맡았을 때, 그것과 연관된 과거를 연상하고 회상하는 현상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인간의 오감 중 가장 각인이 심한 감각이 후각이라고 한다. 
불행하게도 그 여자의 향은 생각보다 흔한 향이었고, 길을 걷다 불현듯이, 그 향이 느껴질 때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게 된다. 
과거의 망령과도 같은 기억 속에 한껏 빠져들다 문득, 내가 허우적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뒤늦은 후회와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또 다른 이유로는 그 여자로 인해 생긴 콤플렉스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로 그 여자는 나에게 큰 상처를 주고 떠났고 이는 콤플렉스가 되어 계속하여 나를 조여왔다.
이로 인해 한동안 그 어떤 일도 하지 못하다 ‘잊고 지내다 보면 잊히겠지’라 마음먹으며 잊었다. 아니, 잊었다 생각했다. 멍청하게도 말이다. 
한때 서로를 강하게 이끄는 만유인력과도 같은 사랑에 몸을 맡겼던 사이였는데 그렇게 쉽게 잊히겠는가. 
이는 내 안일함과 오만함이 빚어낸 멍청함이 분명하다. 
그 결과, 나는 아직도 문득, 아무 이유 없이 힘들어진다.


‘이 여자 때문에 더는 고통받기 싫다.’ ‘한때 ‘너’가 아닌 ‘나’였던 사람 때문에 더는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다.’와 같은 말들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나열되지도, 그렇다고 규칙성이 있지도 않은 상태로 맴돌고 어지럽힘이 반복된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해야 이 지긋지긋한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일까. 
운 나쁘게 마주쳐, 행복했던 기억에서 허우적거리다, 비탄과 함께 깨어나는 이 굴레에서 말이다.
‘스스로가 온전하다고 느끼면 그 어떤 일이 덮쳐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던데 과연, 나는 온전한가? 스스로 그렇게 평가해 줄 만한가?


그 답을 찾고 싶어 첫 번째로 했던 일이 ‘버킷 리스트’ 작성이다.


리스트를 작성하며 그동안 잊고 지내던 내 순수한 욕망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됐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온전한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다. 나를 마주하고 싶다면 우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라 철학자 니체가 말하지 않았던가.
리스트를 통해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욕망을 들여 볼 수 있었고, 이를 실천해 나가며 누군가로 인해 비어져 버린 나를 나로 채우는 게 느껴졌다.


두 번째로 했던 일은 ‘유희 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슬프고 괴로운 일보다는 즐겁고 행복한 일을 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슬프고 괴로울 게 뻔한 일을 굳이 찾아서 하고 싶지는 않다. 그로 인해 입은 손실은 내가 즐겁고 행복하다 느끼는 일을 배로 하여 충당하였다. 
즐거운 일만 하다 보니 전보다 좀 더 자주 웃고 있었다.


유희 주의자로서 버킷 리스트를 행하다 보니 그 여자로 인해 낮아진 자존감이 점점 회복되고 있다. 자존감이 회복됨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와 횟수 또한 줄어들고 있다. 
언젠가 내가 온전한 ‘나’가 된다면, 지금의 나를 떠올리며 ‘잘 이겨냈어. 고생했어’라 한마디 해줄 수 있을 거 같다.

그때야말로 ‘그 여자’라는 세상에서 뛰어내려 그녀와 나 사이의 만유인력이 아닌 ‘나’라는 중력에 몸을 실을 것이다.

그리고 기도할 것이다.

이 중력에 중력가속도가 존재하기를.

 

끄적끄적 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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